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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사료와 유아식품의 독극물

 1988년에 브리턴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을 접했다. 협박 편지였다. 애완동물 사료 회사의 공장장 앞으로 타이프라이터로 친 편지와 함께 동물 사료가 든 통조림 제품이 우송되었다. 통조림 속의 사료는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무색무취의 강한 독성 화학물질'이 주입되어 있었다. 범인은 50만 파운드 (약80만 달러)를 지정한 여러 구좌에 나누어서 입금하지 않으면, 이 회사의 통조림 제품에 독극물을 주입하겠다고 협박했다. 레스터셔 경찰서가 이 사건에 관해 브리턴에게 자문을 구했다. 편지를 자세히 검토한 브리턴은 편지를 쓴 사람이 남자이며, 정신병자가 아닌 평균 혹은 그 이상의 높은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고, 아마도 대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범인은 혼자 범행을 꾸미고 실행했으며 대단한 끈기를 가지고 주의 깊게 범행을 계획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말은 곧 범인은 젊은 사람이 아니며 인내할줄 아는 중년 이상의 남자라는 의미였다. 범인은 경찰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추적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유사 사건에 관해 공개되지 않은 세세한 사항들까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범인은 모든 일을 가명으로 발송한 편지를 통해 진행했으며, 웨스트런던의 사서함을 이용했다. 브리턴은 일단 협박범이 지정한 구좌 중 하나로 한정된 금액을 입금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범인은 현금 자동인출기를 통해서 돈을 빼내갈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면 범인의 이동 경로에서 특정한 양상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동시에 경찰은 이 모든일을 비밀에 붙인 채 영국 전역에 있는 수백개 인출기를 선택하여 비밀리에 감시했다. 협박범은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밤 시간에 인출했으며 인출 지역도 수백 킬로미터씩 떨어진 영국 전역이었다. 브리턴은 범인이 현금을 인출한 지점들을 지도 위에 표시한 뒤, 범인이 런던을 기점으로 한 고속도로 체계를 따라 이동해 현금을 인출하며, 런던에서도 여러 차례 현금을 인출했음을 확인했다. 협박범은 런던 인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밤 시간에 장거리 여행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으로 미루어서 현업에서 은퇴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런던 인근의 인출 지역 위치들을 고려할 때, 범인의 거주지가 이스트런던의 에식스 혼처지 부근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료회사와의 협상이 오래 지연되자, 협박범은 '미치광이 폭파범'처럼 분노하여 오염된 통조림들을 슈퍼마켓의 판매대에 올려 놓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1989년 3월에 이르러서 범인이 요구한 돈은 125만 파운드 까지 올랐다. 오염된 통조림의 수도 14개나 발견되었다. 브리턴은 회사에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만일 회사에서 그 제품을 수거하고 또 공개하지 않는 다면 협박범은 여전히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요구 금액을 계속 올릴 것입니다."

공개된 협박, 공개수사

전국 신문이 이런 사실을 자세하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며칠 지나지 않아서 협박범은 대상을 바꾸었다. 이번에 유아식품 회사인 하인즈였다. 30만파운드의 돈을 내놓지 않으면 아무런 경고 없이 식품에 독극물을 주입하겠다고 협박했다. 사건은 이제 런던 경찰국에서 떠 맡았고, 브리턴은 이곳에서 하는 회의에 참석하여 범인에 대한 추정 내용을 밝혔다.

"범인은 전직 혹은 현직 경찰입니다. 아마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거나 아니면 병가 중일 것입니다. 범인은 현재 진행되는 수사를 꿰뚫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직 내부의 사람들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겁니다." 

 

그의 말에 경찰 내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하인즈의 유아용 분유통에서는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부서진 면도날이 나왔고 가성소다가 검출되었다. 그 중 대부분의 경우가 모방 범죄였지만, 협박범이 직접 저지른 것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경찰은 잘 알고 있었다. 범인이 요구하는 금액도 120만 파운드로 올랐다. 하인즈는 1만9000파운드를 범인이 지정한 여러 은행 구좌로 입금했다. 그리고 이 구좌에서 현금이 주기적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느날 드디어 1989년 10월 20일 밤, 잠복근무를 하던 경찰관의 시야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자동차에서 내린 이 남자는 자동차 경주자용 안전헬멧을 들고 현금인출기로 다가갔다. 경찰이 가서 붙잡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당신들이 왜 이러는지 다알아. 하지만 나는 아무죄가 없어." 이 남자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기절했다. 그는 43세의 전직 형사이던 로드니 위첼로였다. 그의 지갑에는 협박범이 하인즈에 알려 주었던 구좌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현금카드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의 집에서는 또 식품에 오염 물질을 넣을 때 사용한 도구와 재료들이 발견되었다. 그는 에식스의 흔처치에 살았다. 그는 과거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어울렸으며, 심지어 때로는 수사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범죄수사대 사무실에도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적어도 한차례는 잠복 감시 작전을 펼치던 경찰관 친구와 잠복 차량에 함께 타고 있기도 했다. 경찰 당국은 브리턴의 범인 추정 내용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로드니 위첼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본 적도 없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훤하게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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